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도입하겠다고 한 ‘계열분리명령제’가 당초 규제 취지와 맞지 않고 위헌 소지도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.

원래는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제도인데 안 후보 측은 사실상 이를 ‘재벌 해체의 칼’로 사용하겠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. 안 후보는 지난 14일 우선 (미국과 마찬가지로) 국내 금융회사부터 도입한 뒤 재벌 개혁의 성과에 따라 일반 대기업에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. 그러나 금융회사의 부실을 막기 위해서라면 적기시정조치 등 각종 제도적 장치가 이미 국내에 마련돼 있는 데다 이를 일반 대기업까지 확대하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.

금융당국 관계자는 16일 “계열분리명령제가 규정된 미국의 도드-프랭크 법의 취지는 단순히 대형 금융회사를 쪼개자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경영으로 부실 징후가 나타났을 때 정부가 나서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산 매각 등 각종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”이라며 “이를 재벌개혁 등 경제정의를 위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”고 말했다.

이 관계자는 또 “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를 위해서는 금산법에 규정된 적기시정조치 등 현재 시행 중인 제도만 잘 활용해도 충분하다”며 “실제 해외에서도 한국의 은행 구조조정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이 제도를 채택하겠다는 곳이 적지 않다”고 덧붙였다.

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“노무현 정부 초기에 이미 계열분리명령제가 검토됐지만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많다는 이유로 폐기된 적이 있다”며 “재벌이 만약 거시경제 건전성을 해친다고 해도 그건 금융 관련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으로 다뤄야 할 문제”라고 지적했다. 그는 또 “미국에서도 2010년 도드-프랭크법이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계열분리명령제가 실행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”고 밝혔다.
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 역시 “(안 후보 측이) 계열분리명령제의 구체적인 대상 기준이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않았다”며 “(도드-프랭크법에서) 아이디어를 따온 것은 그렇다 쳐도 이를 재벌 개혁의 칼로 쓰겠다는 것은 초법적인 발상”이라고 비판했다.

이에 안 후보의 경제민주화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“재벌 개혁을 공정거래 이슈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. 거시경제의 건전성 차원에서 볼 수 있다”며 “금융 중소기업 조세 등 관련 이슈가 한두 개가 아니다”고 설명했다.

그는 “이 때문에 모든 사안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”이라며 “금융회사에 대해 우선 도입한 뒤 일반 대기업에 적용할지는 그 이후에 검토하겠다”고 했다.

김형호/이호기 기자 chsan@hankyung.com

■ 계열분리명령

전체 경제 시스템에 위협을 가할 만큼 규모가 큰 금융회사(SIFI)나 대기업에 대해 정부가 계열사 등 자산을 강제 매각하도록 명령하는 것을 말한다.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도입된 ‘도드-프랭크 법(Dodd-Frank act)’에 근거 규정이 마련됐다.